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슬픔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요? 어떤 일 때문에 슬픔을 느끼셨나요? 혹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거나 오랫동안 키워 온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지는 않았나요?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무척이나 비통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많이들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랑하고 아끼는 어떤 존재와의 이별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또, 그저 슬픈 내용의 영화나 애절한 곡조의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 슬픈 감정에 동화되어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하고, 딱히 무슨 일이 없는데도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슬픔에 휩싸이는 순간도 때로는 조우하게 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슬픔’이란 기쁨이나 즐거움, 공포나 분노와 같은 다른 감정들처럼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슬픔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무척이나 강렬해서 그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우울증이나 무력감, 인생에 대한 깊은 허무감으로까지 번지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의 삶이 슬픔에 잠식되어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아프고 비통하게 만드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차라리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인간은 조금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에게 슬픔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알약 한 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알약을 삼키실 건가요? 도대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는 이 ‘슬픔’이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왜 필요한 것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 실험 연구에 따르면, 슬픈 음악에 감동받는 정도가 공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슬픈 음악을 들려주고 그 음악이 ‘좋았다’는 사람과 ‘그냥 그랬다’는 사람, ‘별로였다’고 반응하는 사람별로 공감지수를 살펴봤는데요, 그 결과 슬픈 음악이 ‘좋았다’는 사람이 ‘별로였다’고 반응한 사람에 비해 공감지수가 높았던 것입니다. 즉, 슬픈 음악에 감동하는 정도와 공감 능력 간에 정적인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연구 사례에서는 슬픈 기분이 겸손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조지프 포가스 박사와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영화 세 편을 보여 줬는데요, 첫 번째는 행복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두 번째는 중립적인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영화, 세 번째는 슬픈 기분을 유도하는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슬픈 감정을 일으키는 영화를 본 참가자가 행복한 기분을 일으키는 영화를 본 참가자에 비해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죠.
이러한 연구 결과들이 함의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이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가 느꼈던 슬픔의 감정을 떠올려서 다른 이들의 슬픔이나 고통에 공감하며 위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타인을 대할 때는 사려 깊고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슬픔에 잠겼을 때 우리와 가깝고 소중한 이들이 우리의 안위를 걱정하고 위로해 주며, 필요한 도움이나 보살핌을 제공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또, 슬픔은 우리 삶에서 무언가가 결핍되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구처럼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인정이나 지지가 부족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무관심하거나 바라는 애정을 충족시켜 주지 않을 때, 슬픔은 우리에게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사랑이 필요하다는 감정적 메시지를 ‘슬픔’을 통해 전해 옵니다. 이처럼 슬픔은 우리의 인생에서 잊고 있던 중요한 가치나 의미 혹은 소중한 관계나 필요한 욕구는 무엇인지 알아채게 해서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우고, 어그러진 관계는 재건하며,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가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픔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게끔 우리를 안내합니다. 모든 현상이나 현실에 대해 낙관성이 지나치거나 자기 능력을 과신할 경우, 확증 편향에 빠져 상황을 냉철하게 보지 못하거나 위험한 신호마저 지나쳐 버리는 과오를 범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자기가 한번 옳다고 믿는 생각이나 신념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 경향성을 뜻합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거나 나쁜 일이 생겨서 혹은 누군가와의 사이가 틀어져서 슬픈 기분이 들 때, 우리는 혹시 내가 잘못한 일이나 놓친 부분이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됩니다. 자기를 둘러싼 현실은 물론 스스로에 대해서도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됨으로써 자기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슬픔’이라는 감정은 때때로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지만, 슬픔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겸손함을 배우고, 인생의 소중한 가치나 관계를 일깨우며,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 슬픔은 우리가 느끼지 않기 위해 외면하거나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허락하고, 슬픔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에 가만 귀를 기울이며, 슬픔을 보듬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모두 읽으신 여러분께서 아직도 혹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알약을 삼키고 싶으실지 궁금해집니다.
최강록 원장
참고문헌: 최기홍(2018).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 사회평론.
[출처: 정신의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