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을 소개하는 모 인기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오늘을 살 때 행복해집니다.”
이에 한 패널이 의문을 던졌다. 대사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기억한다.
“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거, 오줌을 쌀 때 오줌을 싸는 줄 알죠.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는 그거는 그냥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오늘을 산다, 오늘을 살아야 행복하다, 찬찬히 따져보면 무슨 말일까 의문이 든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이지 어제인가, 당연한 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늘을 사는 것과 행복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다.
폭행, 큰 사고 등 죽음의 위협을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 환자들의 초기 치료 중 하나로 착지(Grounding) 기법이 있다. PTSD의 주요 증상인 재경험, 플래시백(flashback)은 이미 끝난 사고가 그대로 다시 일어나는 듯이 느끼는 증상이다. 실제로, 폭발 사고로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환자가 있었는데, 증상이 심해 면담을 하는 도중 갑자기 사고 장면이 눈앞에 보인다고 하더니 이내 소리를 지르고 의사소통조차 힘든 해리(dissociation)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환자에게, 지금 당신이 사고의 한 장면 속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 면담실에서 주치의와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착지다. 심리적 외상의 기억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 상처가 할퀸 뇌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시시각각 그 장면을 틀어댄다. 그 불안과 공포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는 방법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누가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발이 땅에 닿고 엉덩이와 등이 의자에 닿은 느낌, 어느 방에 있고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 지를 세세히 돌아본다. 그리하여 그때 그 끔찍한 순간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고, 나는 그때가 아닌 지금, 여기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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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픽사베이 |
PTSD의 증상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우리도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살면서 좋았던 일들도 하나 둘 쯤 분명 있었으련만, 과거에 안 좋았던 일, 앞으로 안 좋을 일들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길을 걸으며 아침에 부모와 다퉜던 생각을 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주식이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을 한다. 저절로 찾아오는 생각들이 기뻤던 순간, 즐거웠던 추억에 관한 것이라면 행복에 큰 도움이 될 텐데, 마음이 흐르는 원리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라며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 이번에는 정말로 합격해야 하는데, 이번 일은 잘 풀려야 하는데 라며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이는 ‘틀리거나 잘못된’ 생각이라기보다 ‘비효율적인’ 생각이다. 후회되는 지난 시간들을 자꾸만 떠올린다고 해서 이를 바꿀 수는 없고, 부정적인 미래에 대한 걱정이 원하는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지나간 시간,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지금의 소중한 시간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분명 살아가며 원하는 순간들만을 맞이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후회를 떠올리는 것은, 뇌의 생리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지나간 아픔을 그대로 다시 한번 겪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아직 오지 않은 불행에 대한 상상에 몰입하는 것 또한, 겪을지 안 겪을지 모르는 고통을 미리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할 상처라면, 누구라도 한 번만 겪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닌, 그저 지금 여기에 마음이 자리할 때 마음이 쉰다.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도 행복하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를 조금 부연한다면 다음과 같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지금 행복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도 행복하다.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 챙김(mindfullness)은 ‘알아차리기’를 제시한다. 예컨대 출근길에 어제의 실수가 자꾸 생각나거나,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있으면서도 하반기 공채 걱정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보통은 억지로 과거나 미래에 대한 의미 없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머리를 쥐어뜯지만, 억누를수록 터지는 욕망처럼 그럴수록 걱정은 더 깊어간다.
그 대신 ‘지금, 여기의 내가’ 과거를 후회하고 있구나,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 걱정에 빠지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려 보면 어떨까. 마치 한 발자국 벗어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듯, 나의 생각과 감정이 지금 이렇다는 것을 관찰하여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된다. 당연히 오늘을 산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실은 그동안 얼마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어제와 내일이 가득 찬 마음에 오늘이 들어올 틈은 없다. 오늘의 행복이 마음에 자리 잡고 오늘 하루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으려면, 마음을 청소하고 지금, 여기의 기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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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픽셀 |
돌아보면 아쉬운 연애기억이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참 일 걱정, 미래 걱정이 많았다. 데이트를 나가서는 해결해야 할 일 걱정을 했고, 일을 하면서는 틀어진 사이를 고민했다. 당연히 관계를 잘 이어나가긴 어려웠다. 그리하여 헤어진 것이 아쉬운 걸까? 아니다. 비록 일에 치이고 사람에 괴로웠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은 충분히 소중히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온전히 만남을 소중히 했다고 해서 힘들던 삶이 갑자기 평화로워 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이번 생에 허락된 시간들 중 2시간 남짓, 그 시간만큼은 아름다워지고, 그때의 나는 행복했을 것이다.
아, 이 역시 과거의 생각일 뿐이지 라는 생각이 드니, 문득 지금 글 쓰는 곁에 둔 향기로운 차의 향이 전해진다. 아픈 과거를 떠올리다가도, 지금의 작은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며 꽤 기쁠 수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번엔 다른 이야기. 동기 형과 아이 키우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이는 열심히 사는 동기 부여가 된다, 잘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든다, 이내 스카이캐슬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고, 요즘 세상에는 애 하나 번듯하게 키우기도 쉽지 않더라, 그 학교 학비는 얼마라더라, 아이 한 명당 키우는 돈을 계산하면 얼마라더라... 상투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때쯤, 형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면담하면서 환자들에게 현재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 때가 있어. 아이들은 자기 냄새가 있거든. 늦게 들어오면 아이가 자고 있는데, 그 옆에 누워서 냄새를 맡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 운전하거나 걸어 다닐 때는 논문 걱정, 환자 생각, 할 일이 떠올라서 머리가 복잡한데 자는 아이 옆에서는 별생각 없이 그냥 참 좋아.”
아이의 귓불 내음에 행복해한다고 해서 대출 금리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자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예쁨을 느낀다고 해서 아이의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큰 부자가 되기 전까지, 아이가 명문대에 합격할 때까지 천사처럼 잠든 아이 옆에서 한숨만 쉬어야 할까? 모든 근심이 해결된 상태와 행복은 별개이지 않을까. 어차피 한정된 시간이 주어진 삶에서, 잠든 아이 얼굴의 고요함에 빠져들고 머리칼을 쓰다듬을 수 있다면 그 20분만큼은 온전히 행복으로 가득하다.
마음은, 그 만들어진 원리 때문에 자주 옛 생각에 슬프고 미리 걱정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일을 곧잘 놓친다. 그중엔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들도 가득하다. 과거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구나, 미래 때문에 걱정하고 있구나, 그리고 지금 내 곁에 행복도 있구나, 하고 마음에 속삭인다면 마냥 흘러가기만 하던 행복도 조금씩 곁에 고일지 모른다.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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