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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04 10:27
[Doctor's Mail] 막연한 불안감, 다들 겪는 건가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975
승인 : 2021.11.12 08:00
임지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Doctor's Mail] 막연한 불안감, 다들 겪는 건가요?
[정신의학신문 : 임지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지금 고2여서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있긴 합니다.
한 한 달 전부터 아무런 외상은 없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세상(인생)이 없어지거나 무너질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껴요(죽음에 대한 불안은 아님).
이 생각이 들면서 내가 여태 살아온 시간들이 부정받는 느낌이에요. 생각을 지우려고 애써 내 세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으니 오늘 하루라도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을 해요. 매 순간은 아니지만 요즘엔 하루에 한 번씩은 불쑥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요.
그리고 울 때 소리를 안 내려고 숨죽여서 우니까 이제는 소리 내서 펑펑 울고 싶은데 소리 내서 우는 법도 모르겠어서 한 번씩 이유 없이 소리 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근데 어젯밤에 불안이 찾아오면서 가슴도 답답하고 이유 없이 너무 울고 싶어서 울면 나아질까 하고 그냥 펑펑 울었어요.
이유 없이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괜찮은 건가요? 그리고 이 모든 걸 통틀어 불안장애일까 해서 자가진단도 해봤는데 다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이 정도 불안이면 다들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불안인지 궁금해요.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과 전문의 임지섭입니다.
올려주신 사연 잘 읽어 보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막연한 불안감,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부정받는 느낌, 가슴 답답한 느낌, 이유 없는 눈물에 대해서 문의해주셨습니다.
불안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는 공포와 더불어 어떤 위협을 느낄 때 일어나는 생물학적 반응으로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그렇기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불안한 감정 자체가 병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안장애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는 이런 불안과 관련된 생각, 행동, 감정들이 내 일상생활과 대인관계, 기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의 정도와 어느 정도의 불편감을 경험하고 있는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불편함의 정도가 치료가 필요한 문제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슴 답답함 역시 불안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감각은 단순히 심리적인 느낌 때문만이 아니고, 불안할 때 발생하는 자율신경계의 활성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심장이 빨리 뛰거나, 숨쉬기가 곤란하게 느껴지고, 소화가 잘 안 되고, 변비나 설사가 생기고, 손발이 차고, 뒷목이 뻣뻣해지고 두통이 생기고, 목 안에 뭐가 있는 것 같고, 어질어질하고, 잠이 오지 않는 증상들이 흔히 나타납니다. 이러한 신체적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을 일으키는 신체의 변화는,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투쟁하거나 도망가 거는 것을 준비하는 생물학적인 반응이며 생존을 위한 적응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불안이나 공포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갖게 되는 적응 과정이며, 경고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경고 반응”이 없다면 생존을 유지하는데 어려울 것입니다. 질문자 님께서도, "불안"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불안한 감정이 생겼을 때는 그 불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위기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순간이라는 신호로 생각하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위기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경우에는 과거처럼 급작스러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갈등, 스트레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일상의 많은 일들 혹은 외부의 압력과 내적 요구 사이의 갈등에 의해서 발생한 ‘마음이 느끼는 위기상황’이 많이 불안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혹시, 질문자님께서 지금 느끼시는 불안과 갑작스러운 눈물은 “나 자신의 마음을 더 들여다 보라”는 “마음의 위기 신호”인 것은 아닐까요? 그동안, 고등학생으로서 마음을 돌보기보다는, 그저 성적만을 신경 써야 했던 치열한 상황 때문에, 대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에 마음이 지쳐 버린 것은 아닐까요? 지금부터라도, '갑자기 본인의 인생이 무너질 것 같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부정받는' 생각과 느낌들을 단서로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는 연습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의 정도에 따라 치료의 필요성을 결정하셔야 하지만, 잘못된 자세가 오래되면 병이 생기는 것처럼, 오랜 시간 만성화된 스트레스는 고치기 힘든 마음의 병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치료의 그 과정을 함께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려운 일이시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용 전념 치료의 관점에서 불안을 느끼는 순간에 시도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1.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속도를 늦춘다. 바보 같이, 우스꽝스러울 만큼 천천히 속도를 늦춘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발음을 뭉개고 자기가 나무늘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2. ‘바로 지금 이 순간,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가볍게 바라보며, 당신에게 의미 있는 삶의 주인이 되고, 삶에서 달아나고 있다고 느낄 때 부드럽게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가?”
3. 당장 이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다. 대답하기 전에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라. 한 단어 한 단어 크게 읽고 주의 깊게 들으면서 그 질문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4. 그런 다음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그 질문에 대답해본다. 삶에 작은 친절을 베풀거나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작은 선물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