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와 데이지라는 두 환자가 있었다. 70세의 벨라는 췌장암에 걸렸지만, 토요일마다 마당의 꽃을 돌보고, 아들과 산책을 즐기고, 쿠키를 구워 이웃과 나눠 먹었다. 반면 43세 데이지의 건강검진 결과는 깔끔했지만 생기가 없고 나이 들어 보였다. 데이지는 원인 불명으로 아파서 회사를 자주 빠지는 바람에 점점 고립됐다. 의료적으로 문제가 없는 데이지의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지만, 벨라는 그녀에게 암을 진단한 종양학자보다 오래 살았다.
왜 누군가는 병이 걸렸는데도 건강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병이 없지만 몸이 안 좋다고 느끼는 걸까.
1978년 ‘사이언스’에 특이한 토끼 실험 논문이 실렸다. 로버트 네렘 박사 연구팀은 토끼들에게 고지방 사료를 먹이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했다. 몇 달 후, 모든 토끼의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병 확률이 높아졌지만, 유독 한 무리의 토끼만 혈관에 쌓인 지방이 60%나 적었다. 변수를 확인한 결과, 건강한 토끼들은 한 다정한 연구원이 돌봤던 토끼들이었다. 그는 토끼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말을 걸고,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줬다.
병에 걸리는 토끼와 건강을 유지하는 토끼를 나누는 것은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애정’이었다. 일명 ‘래빗 이펙트’다. 컬럼비아대 의대 켈리 하딩 교수는 ‘래빗 이펙트’와 ‘벨라와 데이지’의 임상에 주목해서 ‘다정함’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정밀하게 증명해냈다. 수천 건의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유대와 친절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놀라운 효력을 담은 책 ‘다정함의 과학’을 썼다. 병원의 렌즈를 폭넓게 확장해서 의학계의 찬사를 받고 있는 켈리 하딩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건강은 신체, 정신, 사회적 안녕의 통합적 상태다.”
병에 걸렸지만 건강하게 오래 산 ‘벨라’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아픈 ‘데이지’, 의료 현장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목격하나.
“의학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을 자주 만났다. 의사로서 난감한 일이고, 그 일이 나를 ‘래빗 이펙트’로 이끌었다. 병에 걸리는 토끼와 건강을 유지하는 토끼를 나눈 것은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돌본 사람의 ‘애정’이었다.”
‘래빗 이펙트’가 의사로서 당신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래빗 이펙트는 의사들이 의학에서 놓치고 있는 걸 보여줬다. 건강하지 않은 생활 방식의 토끼에게 말을 걸고 안아주자 식단의 많은 부작용이 사라졌다. 놀랍지 않나? 나는 지난 몇 년간, 다정함이 우리 신체에 미치는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 데이터는 정확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건강의 본질적인 요소는 의학 서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일상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건강 문제의 본질이다.”
의학계와 동료들은 건강에서 다정함의 변수를 크게 본 당신의 결론에 어떤 반응인가.
“많은 동료가 지지해주고 있다. 이 데이터는 의사들이 임상시험에서 보았던 수많은 사례를 과학으로 입증해주고 있으니까. 건강한 삶에 이상을 둔 진짜 의사들은 환자들이 병원 밖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일터와 관련된 연구는 병원에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직장인의 건강 부분이 흥미로웠다. 심장 질환 사망의 가장 강력한 예측 요인이 콜레스테롤이나 혈압이 아니라 그들의 고용등급이었다는 건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런던의 화이트홀 지역에서 10년간 공무원을 관찰하던 중 밝혀진 사실이다. 책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윗사람이 심장마비 위험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데이터는 정반대였다. 급사 위험은 사장이 아니라 낮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이 컸는데, 심장마비로 사망 확률이 높은 직급에 비해 3~6배가량 높았다. 이걸 통해서 직장에서 존엄성이 얼마나 건강에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과장을 좀 섞자면, 나는 인사부 지침을 모두 지워버리고 그냥 ‘서로에게 친절하자’로 바꾸라고 한다.”
좋은 의사보다 좋은 상사가 질병 예방에 도움 된다고 생각하나.
“좋은 의사만큼 좋은 상사를 만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사에게 지지를 받고, 일하는 동안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인정과 보상을 받는다고 느낄 때 면역 시스템이 개선되고 질병 저항력이 커진다. 얼마나 공정하고 따뜻한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개별 직원의 건강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번아웃(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 관련한 위험 신호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지속적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위협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 존엄성이 침식당한다고 느낄 때다. 장기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도한 호르몬 작용으로 신체에 마모가 일어나고 염증이 촉진돼 늙어 보이고 생활 습관이 나빠진다. 번아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일상적으로 독이 되는 환경은 위험하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낄 때 더 높은 창의력을 발휘한다. 마음이 편안할 때 두뇌 피질 기능이 활성화돼 문제 해결에 몰입할 수 있다.”
매일 포옹을 받은 사람이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았다는 통계도 신선했다.
“포옹에 관한 데이터는 나도 놀랐다! 감기 바이러스 노출 실험을 했을 때, 매일 포옹을 받은 사람이 병에 걸릴 확률이 32% 낮아졌고 회복 속도도 빨랐다. 위안을 주는 모든 손길은 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친구가 어깨를 토닥여주는 행위부터 포옹, 악수, 마사지나 미용사의 헤어커트까지. 혼자 사는 사람에겐 반려동물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때론 무게감 있는 묵직한 담요나 전기마사지기 등도 도움이 된다. 팬데믹 기간에는 접촉이 제한되기 때문에 전화 통화나 공동 야외 활동이라도 하라. 신체가 닿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뇌의 동기화’가 발생한다. 여름밤의 반딧불이처럼, 같은 파장 안에 있게 된다.”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다정함’이 생명을 살리거나 DNA 서사를 바꾸기도 한다고.
“그런 미스터리한 기적 앞에서 의사들은 한없이 겸허해진다. 출산한 쌍둥이 중 엄마가 숨이 멈춘 한 아이를 안고 말을 걸었다. 제이미라는 이름의 뜻을 설명해주고 지켜줘야 할 여동생이 있다고 말해줬다. 그 순간 사망 판정을 받은 아이가 움직였고 살아났다. 부모의 사랑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아이의 생명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과 나누는 신체 온기는 치유의 절정을 보여준다.”
많이 핥아주는 어미 쥐가 유순한 새끼를 기르고, 적게 핥아주는 어미 쥐가 공격적이고 불안한 새끼 쥐를 기른다는 발견은 후성유전학의 발견과 포개진다. 환경이 인간 DNA의 서사를 바꾼다는 결론을 부모가 양육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아이가 선택권이 있다면 차가운 엄마보다 다정한 엄마를 선호할 거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생존에 절대적이거든. 우리는 어미 쥐처럼 핥아주지는 못하지만, 애정 어린 손길로 아이의 운명을 바꿀 여러 방법이 있다. 편안하게 진심을 느낄 만큼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눈을 더 깊게 바라보고 더 애정을 담아 웃고 함께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산책하라. 가끔 온몸으로 힘있게 안아주라. 그렇게만 해도 아이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할 거다. 그 영향은 유전 형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손주와 증손주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쓰기와 건강의 효능도 인상적이었다. 쓰는 것만으로 통증이 완화된다는 게 사실인가.
“실험에 의하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주관적 고통이 줄어들고 면역기능의 혈청 지표가 개선됐다. 3일 동안 하루에 15분씩 글을 쓰는 것처럼 간단한 방법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재구성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글쓰기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도록 도와준다. 이것을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른다. 그 경험 후 당신이 어떻게 강해졌는지를 깨닫는 거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사를 느끼고 타인과 가까워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다정함을 의료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요한 디테일은 무엇인가.
“공감과 연민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과 연민의 차이를 인지하는 게 왜 중요한가.
“공감과 연민의 차이를 알아야 번아웃과 독이 되는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다. 공감은 필터 없이 온전히 타인의 고통을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고, 연민은 타인의 감정 상태를 인지하고 완화해주려는 노력이다. 공감은 긍정적인 상황에서는 훌륭한 기능을 하지만,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받아들이기 힘겨울 수 있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번아웃을 경험할 위험도 많다. 다행히도 연민은 지적 각성 능력이다. 타인과 유대감을 느끼고 스트레스 경험으로부터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두 개의 감정은 다른 뇌를 사용한다.”
건강을 위해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가.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심리학 교수인 로빈 던바의 연구에 따르면,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의 가까운 친구가 있을 때 건강을 위해 가장 좋지만, 당신을 지켜줄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도움 된다.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만나는 이웃과 나누는 눈인사 등의 미세 친절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다정한 선택을 하면 된다. 건강은 일상의 수많은 사소한 순간 속에 숨어 있다. 엄마가 아기를 안을 때, 형제·자매에게 전화를 걸 때, 친구들과 볼링을 칠 때도 존재한다. 건강의 파급 효과에서 사랑의 중요성만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뚜렷한 삶의 목적이 있을 때 심장마비, 뇌졸중, 치매 등 각종 사망 위험률이 감소한다. 나는 그 데이터를 확인한 후 왜 같은 진단을 받고도 어떤 환자는 더 나은 생활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가 있는 것은 우리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