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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7-31 12:49
노년내과 의사가 말하는 느리게 나이 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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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내과 의사가 말하는 느리게 나이 드는 법
팔팔하게 99세까지 살다 2~3일 안에 여생을 마치려면? ‘내재역량’이 중요하다. 내재역량은 이동성, 마음 건강, 건강과 질병 그리고 ‘내게 중요한 것’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 아찔한 숫자가 있다. 현재 한국의 노인 돌봄은 50~60대가 거동이 불편해진 80대 이상 부모뻘 세대를 보살피고 간병하는 형태이다. 2022년 기준, 60대 인구(약 720만명)가 80대 이상 인구(약 220만명)보다 월등히 많지만 돌봄 인력을 구하고 돌봄 비용을 부담하는 일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앞으로 60년 뒤 지금 20대가 80대에 접어드는 2082년으로 가면 정말로 문제가 심각해진다. 약 670만명인 20대 대부분이 80세 이상까지 생존할 텐데 그때 가서 돌봄을 제공할 핵심 연령층인 0~9세 인구는 절반 수준(36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2082년의 노인들이 2022년의 노인들처럼 공적·상업적으로 돌봄서비스에 의존한다면 그야말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노년내과 전문의이다. 그는 신간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더퀘스트)에서 “성공적인 나이 듦은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젊은 세대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과업”이라고 강조한다. 고령화 저출생 시대에 ‘기대수명’은 늘어나는데 ‘건강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지 못한다면 개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의료비와 돌봄 비용에 휘청거릴 위기에 처한다. 정 교수는 “현재 20~40대가 믿고 의지할 것은 40~ 50년 후에도 잘 작동하는 스스로의 내재역량밖에 없다”라고 썼다.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은 세계보건기구가 2015년에 제시한 개념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내재역량을 키우면 가속 노화를 막고, 말년까지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그림 1〉 참조). 흔히 말하는 ‘8899234 (팔팔하게 99세까지 살다 2~3일 안에 여생을 마치는)’ 삶이다. 정 교수는 성공적인 나이 듦, 즉 내재역량을 떠받치는 네 가지 기둥으로 4M을 제시한다. 4M은 이동성(Mobility), 마음 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의 약자이다. 의사가 썼지만 이 책에는 의료적 처치나 약물 복용을 권유하는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 교수는 ‘항노화 요법’이라며 일선 병의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러 시술의 허와 실을 과학적으로 가려낸다.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이 무한 증식하는 의료비의 늪에서 빠져나와 지속가능성을 갖추려면 노인에 접어드는 실질 연령을 높이고, 국민들이 의료 이용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노인의학은 이를 위한 필수적 분야이지만 한국 풍토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진료 과목별로 분절화돼 있고, 저출생 고령화 담론도 주로 인구학·사회복지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된다. 지금은 방 안에 거대한 코끼리가 있는데 통합적인 접근을 못하고 제각각 부분 부분을 보고 있는 형국이다.”
실용서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실은 노인의학 프로파간다(선전물)가 아니냐고 묻자, 정 교수는 웃으며 그렇다고 인정했다. 1월1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120분 동안 ‘느리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노년내과를 포함한 노인의학은 아직 한국에서 생소하다. 책을 읽으며 고령자를 진료하는 분야라는 개념을 넘어 몸과 건강에 대해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인의학을 한다고 하면 65세 이상 환자를 다 보겠다는 거냐며 기존 의료계에서 위협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정확하게는 65세라는 연령이 아니라 ‘노쇠’가 있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곳이 노인의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77세이다. 이건 노화과학자들이 평균을 구한 것일 뿐, 어떤 사람은 60대 후반인데 몸의 기능이 떨어지고 병이 많아 노쇠한 모습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80대가 넘어도 노년내과에서 볼 필요가 없을 수 있다. 노쇠는 노화 정도와 기능 상태, 질병 상태에 따라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개별 질환이 아니라는 뜻에서 ‘노인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근감소증을 앓는 환자가 있다. 현재 의학적 접근법으로는 먼저 약을 찾는데 근감소증은 별다른 약이 없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보통 단백질을 섭취하고 근력운동을 하라고 한다. 그 처방으로는 대부분 좋아지지 않는다. 근감소증 같은 노인증후군은 여러 요인이 맞물려 생긴 악순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근육이 빠지는 이유 중에 우울증이 있다. 우울증이 있으니 밤에 잠을 못 자고, 식사를 못하고, 활동량이 줄어든다. 이런 분들이 일반 성인과에 가서 식욕촉진제나 소화제를 처방받는다. 그러면 더 빨리 나빠진다. 이런 약은 장의 예민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데 동시에 사람을 더 가라앉게 만든다. 그 결과로 활동량, 식사량이 줄어드니 근육이 또 빠진다.
이렇게 해결되지 못한 노인증후군이 쌓여갈수록 신체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어느 정도가 되면 밥을 지어 먹거나 청소·빨래 등 집안일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장기노인요양보험에서 4등급이 나온다. 여기서 더 진행돼 스스로 씻을 수가 없으면 노인장기요양 3등급이 나온다. 돌봄 요구가 생기는 것이다.
증상이 생긴 부위나 장기만 들여다봐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렇다. 방금 사례를 노인의학적으로 접근하면 그 증상에 한정된 효과를 가진 약이 아니라 악순환을 초래한 원인들을 하나하나 찾아 들어간다. 우울과 수면을 나아지게 하면 영양이 좋아지고,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다시 사람들을 만나러 절이나 교회에 나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근력 손실을 막아 환자의 컨디션이 좋아진다. 선순환이 생긴다. 안타까운 건 이 같은 문제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일찌감치 이런 접근법이 도입되었는데 한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은 1940년대부터 노인의학(geriatrics)이 있었다. 영국 NHS(국영 의료서비스)를 보면, 물론 그 안에 여러 전문 분과가 있지만, 의료체계가 크게 소아과·성인과·노인과로 분류돼 있다. 미국과 캐나다도 1970년대에 노인의학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와 노화 속도가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 타이완, 싱가포르도 부지런히 노인의학을 도입해서 성인의 질병과,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신체기능이 나빠진 어르신들 사이에 있는 시기를 지탱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이 시기를 담당하는 의료서비스가 붕 떠 있다. 이대로면 고령화 시대에 의료비가 무한 증식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병의 개수가 계속 늘어난다. 현재 분절된 의료체계에서 혈압은 순환기내과, 당뇨는 당뇨과, 실금은 비뇨기과, 관절 통증은 류마티스 내과 이런 식으로 찾아가다 보면 7~8개 끝도 없이 늘어나는데 이 환자의 전체적인 기능은 누구도 보지 않는다. 어르신이 휠체어를 타고 이 과, 저 과를 전전하다 요양시설로 들어가게 되는 거다.
한국에는 왜 노인의학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나?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노인의학이 전문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에서 노인의학 수가가 따로 책정이 안 되어 있다. 우리는 진료를 보면 포괄진료를 하기 때문에 환자를 20~30분씩 봐야 한다. 그런데 전문 분야가 아니라 노인의학에 맞게 지정된 수가가 없으니 일반 내과 선생님들이 받는 1만원 초진 진료비를 동일하게 받는다. 수익이 나질 않는다. 나도 따지고 보면 지금 병원에 돈을 벌어주기보다는 손실을 입히고 있다. 그러니 종합병원에서 노인과를 개설하지 않고, 노인의학을 하는 사람들도 갈 자리가 없다.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데다 다들 젊게 살고 싶어 하니 노인의학이 각광받는 분야일 줄 알았는데 의외다.
노인의학 보급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쓴 책이 전작 〈지속가능한 나이 듦〉(두리반, 2021)이다. 보고서처럼 써서인지 거의 읽히질 않았다. 이번 책에서는 노인의학적 개념인 내재역량과 4M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노인의학적 사고방식을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계가 아니라 국민들을 설득해보자 싶었다.
이번 책에서는 아직 주요한 장기 이상이 발생하거나 노쇠하지 않은 대다수의 성인, 특히 30~60세의 사람들을 위한 조언들을 담았다고 밝혔다.
‘가속 노화(accelerated aging)’가 철학 또는 임상의학과는 거리가 먼 연구에서 쓰이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 사람의 노화를 측정하는 기술에 엄청난 혁신이 생겼다. 현재는 ‘노화시계’라는 과학적인 툴이 나와 있다. 원래 노인의학에서 쓰던 ‘노쇠지수’는 어느 정도 노화가 진행돼 기능저하가 생긴 사람들만 측정이 가능했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기술의 발전으로 생리학적인 여러 파라미터(변수)를 이용해 젊은 사람일지라도 가속 노화 정도와 생물학적 나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서 젊었을 때 어떤 생활습관을 가지고,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시했는지에 따라 노화시계나 생물학적 나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사실 이제는 증거가 너무 많이 쌓였다.
제목만 보면 ‘안티에이징(anti-aging)’ 책인가 싶은데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아는 안티에이징, 항노화와 결이 꽤 다르다.
요즘 흔히 언급되는 안티에이징은 피부 미용 같은 거라서 노화과학자 시각에서는 엄밀하게 말해 항노화라고 할 수 없다. 노화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안티에이징은 뭐냐면, 노쇠가 진행되는 분들에게는 노화세포가 있는데 그걸 터트려버릴 수 있는 치료이다. 쥐를 대상으로 ABT263 같은 백혈병 약을 실험해보면 생물학적 나이가 줄어든다. 역노화가 일어난다.(역노화 말고) 가속 노화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저속 노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실제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나는 물질들이 있다. 가장 유망한 물질이 라파마이신이다. 해외에는 이런 약재의 조합을 사람들에게 쓰는 클리닉이 있고, 지금은 막혀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약들을 비보험으로 처방하는 클리닉들이 몇 년 안에 생길 거라고 본다. 주의해서 봐야 하는데 이건 노인의학과 구별되는 ‘노화의학’이라는 다른 분야이다.
‘내재역량’이 책의 핵심 키워드이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재역량은 사람의 신체기능, 인지기능, 감각기계, 활력, 사회자원, 보건의료적 환경 등이 포함된 광범위한 개념이다. 삶의 질을 지키면서 노년의 삶을 독립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게 필요하다. 어찌 보면 좋은 삶을 구성하는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의학적 문제도 당연히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이 자기 과목의 진단명 딱 하나만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건강식품, 재산, 이런 식으로 하나의 포인트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내재역량을 키우려면 투자 포트폴리오처럼 총체적으로 삶을 가꾸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에 나오는 네 개의 기둥 ‘4M’이다.
이동성·마음 건강·건강과 질병·나에게 중요한 것. 이 네 가지를 합쳐 4M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직접 만든 건가?
아니다. 4M은 미국노인병학회 등에서 발표한 노인의학적인 핵심 프레임워크(뼈대)로 노인의학 비전공자도 내재역량 강화를 시도해볼 수 있도록 고안된 매뉴얼이다. 굳이 노쇠한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악순환에 빠져 있는 환자가 문제의 원인을 찾아들어가 선순환을 만드는 데에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그림 2〉 참조).
첫 번째 기둥이 ‘이동성’이다. 책에서 “현대인의 이동성 내재역량은 원시인류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졌다”라고 지적한다.
인간의 골격계는 100만 년 이상 이동과 생산수단 역할을 했다. 자동차, 엘리베이터 등 기계가 발전하면서 근골격계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대가로 현대인들은 근골격계의 불편과 질병, 노년기 신체기능 저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동성이 중요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내재역량이 어느 정도 이하로 떨어지면 기저귀를 차야 한다. 이 단계가 되면 많은 어르신들이 요양시설에 들어간다. 많은 분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이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는 고민해본 적이 없다. 보통 무슨 운동을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이동성 내재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피라미드처럼 여러 요소를 쌓아가야 한다(〈그림 3〉 참조).
그럼 어떤 식으로 운동을 해야 하나?
일단은 평소 신체 활동과 움직임을 최대한 통합해야 한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이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 하루 20㎞를 걷고 뛰는 정도는 끄떡없다. 그다음에 피라미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선 충분한 영양과 수면이 필요하고, 관절 가동 범위를 확보해야 하고, 코어나 둔근을 강화하는 운동을 해줘야 하고, 그다음에 개별적인 근력운동, 그다음에 유산소 운동과 요가 같은 밸런스 운동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것이 다 된 상태에서 더 하자면 스포츠를 추가할 수 있다.
지금 말한 요소를 두루 갖춘 운동은 없나?
그런 종목은 없다. 그나마 광범위한 운동으로, 유산소 운동과 관절 가동 범위를 모두 커버하는 수영을 들 수 있는데 그래도 한 가지 운동만 하면 안 된다. 한 가지 운동을 몸에 밴 습관으로 반복하다 보면 안 좋은 관절 자세가 점점 고착된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얼마간 비용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동성 내재역량이 줄어들면 말년에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에서 근육 1㎏ 감소는 적어도 400만원의 경제적 손실에 해당한다. 병에 걸리면 최첨단 치료를 받고자 수천만 원을 쏟아부으면서, 기대여명과 독립적인 삶의 기간을 늘리는 운동과 생활습관에 투자하지 않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책에서 정희원 교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민체력100 체력인증센터’를 방문해 운동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두 번째 기둥이 ‘마음 건강’이다. 정신과 심리는 어떻게 가속 노화와 연결이 되나?
‘마음 챙김’이 되지 못한 ‘마음 놓침’ 상태는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계속 내리면서 무언가를 지르려는 상태와 비슷하다. 뇌의 전두엽 기능은 떨어지고 도파민을 쫓아 쉽게 자극에 빠진다. 집중력과 인지기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건강에 좋지 못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속 노화 라이프스타일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이비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뇌과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중독이나 보상 시스템 관련해 중요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즐거움의 적응 현상’ 때문에 중독과 보상으로 얻는 자극은 곧 줄어들고, 더 큰 자극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재산이 두 배로 늘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품을 사도, 술을 마셔도, 합성 마약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는 또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여서 몸에 만성염증을 불러오고 가속 노화로 이어진다.
세 번째 기둥이 ‘건강과 질병’이다. 드디어 메디컬한 얘기가 나오나 했는데 주요 내용은 식습관, 특히 체형과 영양분 섭취이다.
이번 책은 노쇠가 진행된 분들이 아니라 예방하는 관점에서 쓴 책이라 의료적인 내용은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는 정말로 중요하다. 가속 노화를 만든다고 알려진 몇 가지 키 플레이어가 있다. 정제 곡물과 단순당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둘은 혈당을 급격히 올려 인슐린(혈당을 낮추는 호르몬) 분비를 유발하고, 몸에 들어온 에너지가 근육이 아니라 지방과 간에 쌓이게 만드는 주범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잡곡밥 등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해 흡수 속도를 완만하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많은 분들이 ‘저탄고지’ 같은 식단을 굳이 찾고 있다. 혈당 변동성이 크지 않은 식사가 좋은 식사라는 것을 기억해두면 된다. 또 여기 그래프(〈그림 4〉 참조)에 나오는 것처럼 근육을 키우면 근육이 흡수하는 혈당이 증가해 혈당 변동성을 완만하게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이동성 내재역량이 낮고 근육이 없는 사람은 흡수할 수 있는 혈당도 적어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불룩한 ET 체형이 된다. 이처럼 내재역량을 구성하는 4M은 다 연결돼 있다.
“당 떨어진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 않나. 나도 기사를 마감하다 보면 당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자꾸 초콜릿 같은 단당류에 손이 간다.
그건 사실 당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서 몸이 도파민을 찾는 것이다. 당분은 보상회로에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빠르게 분비시키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그걸 섭취하면 곧 인슐린이 나오고 혈당이 뚝 떨어지면서 다시 스트레스 호르몬이 올라간다. 그러면 또 당분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현대인의 생활습관, 태도, 가치관이 내재역량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고 가속 노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그런데 지금처럼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던 시대도 없다.
지금 노년기에 있는 분들은 젊어서 가속 노화의 압력에서 자유로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현대 의료시스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58년생 개띠를 기준해 앞뒤로 10년에 해당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건강했던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금 20~30대는 어려서부터 초가공, 정제 곡물을 필두로 하는 식품 산업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플랫폼 비즈니스에 흠뻑 노출돼 살면서 노화를 앞당기고 있다.
미국, 유럽 쪽 연구를 보면 1990년대 이후에 노인들의 노쇠 정도가 악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1990년대 노인보다 2020년 같은 연령대 노인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쁘다. 우리나라도 그걸 따라갈 거라고 생각한다. 물증이 있다면 ‘국민건강영향조사’에서 한국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 노쇠 정도가 개선되던 경향이 2014년에 멈췄다. 또 2008년과 비교해 2020년 한국 성인 남성의 비만 유병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대로 간다면 2020년대 30~40대는 부모뻘 베이비부머보다 기대수명이 짧아질 수도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 한 명이 떠오른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술·담배도 많이 하고, 인생의 온갖 쾌락을 즐기며 살다가 건강하게 여생을 마친 어르신들도 있다.
사람들은 원래 내러티브에 취약하다. 데이터를 제시해도 반례가 하나 존재하면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가속 노화의 삶은 본인만 고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식 세대에 과도한 돌봄의 짐을 지우고 사회경제적 압력을 가중시킨다. 모든 사람이 이 책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한두 분이라도 동참해준다면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