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유행어가 있습니다. 프로 게임 선수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기자의 손을 거쳐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된 문장입니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16강 진출을 위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강팀 포르투갈을 꼭 이겨야 했습니다. 동점으로 끝날 것 같던 경기를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골로 이긴 후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건네받은 태극기를 흔듭니다. 태극기에 있던 이 문장이 극적인 결과와 맞물려 국민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가 있지만 버티고 이겨 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줍니다.
올해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에는 공부나 운동을 하는 모습을 올려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인증하는 것이 유행했다 합니다. 수동적인 형태로 소비를 통해서 단기적인 즐거움에 집착하는 것보다 건강과 삶에 유익할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멋지고, 뿌듯하고, 닮고 싶다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럽죠.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게 됩니다.
그런데 진료를 하다 보면 ‘불굴의 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학부생이 전공 공부가 자신과 잘 맞지 않거나 대학원생이 학위 논문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막다른 골목에 몰린 느낌을 호소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해내는데 나만 못하면 큰일이 난다는 것이죠. 마음만 급해져서 일도 진행이 안 되고 그렇다고 휴식도 잘 취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병실에 있으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사고가 나길 바라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졸업 시점을 미루고 차근차근 해 나갈 것을 권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사고가 나길 바랐던 사람에게 그런 조언은 잘 들리지 않는 것이죠. 내가 스스로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으니 차라리 사고로 죽거나 다쳐서 비자발적으로 그만둘 수 있기를 바라는 상태니까요. 어쩌다 시험 성적이나 연구논문을 자신의 생명과 같은 순위로 두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을 잘 살아내겠다.’는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일이나 학위는 삶을 사는 도구 중 하나일 것인데 우선순위를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축구 경기에서조차 아무리 중요한 경기더라도 선수 생명이 위험하다면 출전의 마음을 꺾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다른 경기를 해낼 수 있죠. 생명을 놓는 경우는 불치의 병이 악화되어 의식이 흐려지고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 정도에서나 꺾을 법한 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마음을 다잡으며 “할 수 있다”를 외쳐야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물러나서 자신을 보듬으며 재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패턴이 반복되며 진척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상급자나 선배에게 업무 자체를 물어볼 수도 있고, 심리 상태에 대해서도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 책의 제목을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로 지었습니다. 마음이 단단하면 부러지니 유연한 마음으로 인생을 단단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때와 상황에 맞게 마음과 인생을 단단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살자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요. 상황 판단을 하려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중에 자신의 생명을 가장 높이 두셔야 합니다. 가끔 영화에서는 가족이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자신의 맥락에서 더 구체적일수록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더 버는 것이 중요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느라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만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편하고 돈 잘 벌고 명예로우며 권력도 많은 직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더 필요한 것과 덜 필요한 것을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주어진 것만 잘 해내서 안전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소박한 것도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평균은 집단에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자신을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는 노력을 해 봐야 나에게 어느 정도가 ‘평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탐험해 보시길 기원합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2년 12월 16일 15면 ‘차라리 사고 나서 쉴 수 있었으면: 우선순위의 오류’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출처 : 정신의학신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