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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1-03 11:18
끊임없이 자책하는 내면의 목소리, 어떻게 다뤄야 할까?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30  
끊임없이 자책하는 내면의 목소리, 어떻게 다뤄야 할까?
승인 : 2022.12.13 08:00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받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학업 성적이나 입시 결과, 성인이 된 후에는 취업, 직장에서의 인사평가 등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부족할 때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평가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어느새 가장 엄격하고 까다로운 평가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했을 때, 중요한 경기나 발표에서 긴장하고 실수했을 때,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등 외부로부터 부정적 반응이 올 때 이런 자책하는 ‘내면의 목소리(inner voices)’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내면의 목소리는 외부의 평가에 앞서 들려올 때도 많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넌 해낼 수 없을 거야.”,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얼마나 멍청하고 바보 같은지 봐. 네가 다 망쳐 버렸잖아.”, “넌 너무 못생겼어.” 등 우리가 가장 취약한 부분을 날카롭고 깊숙이 파고들어 상처를 줍니다. 

내면의 목소리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거절,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런 메시지들이 지속적으로 내면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자기비판(self-criticism)은 사실 일종의 생존전략이자 방어기제로도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이 나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하고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열등감과 수치심을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기비판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여겨지기보다는 성취나 특정 행동을 통해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던 경험, 조건적인 사랑의 기억이 우리를 더 많은 성취와 완벽주의를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공이나 성취를 통해 온전한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또 다른 도전 과제가 주어지기 전까지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과제에 성공하고 나면, 또 다른 과제를 찾아 쉼 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성취와 성공 이후에도 자책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이는 우리의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 맹목적으로 성취와 완벽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한 편에는 언제나 공허함과 불안함이 공존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내면의 목소리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요? 

 

1. 1인칭이 아닌 2인칭, 3인칭 시점에서의 거리 두기 

단순히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억압하기만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그것을 ‘나’라는 1인칭 시점이 아닌 ‘너’ 또는 ‘그/그녀’와 같은 3인칭 시점으로 전환하여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실수해서 다 망쳤어.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그가 정말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걸까? 사람들이 다 그를 싫어할까?’라는 질문으로 3인칭 시점으로 객관화시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우리는 상황을 과장하여 최악의 경우로 파국화(catastrophizing)하여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여겼던 실수가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리라는 생각 역시 비합리적 신념(irrational belief)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내면의 목소리에 이름 붙이기 

나의 약점을 파고드는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름을 붙여 보는 것(labeling)을 추천합니다. 나에게 특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자기비판이 무엇이며, 그것이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기억과 연관되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촉발되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면 자기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이건 사실이 아니야. 내면의 목소리가 하는 말일 뿐이야.’라고 생각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3. 자아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를 명확하게 ‘성공한 나 vs. 실패한 나’, ‘좋은 나 vs. 나쁜 나’, ‘훌륭한 나 vs. 쓸모없는 나’와 같은 이분법적 범주 안에 가둬 둡니다. 완전히 성공하거나 완전히 실패하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훌륭한 나거나 반대로 천하의 나쁜 사람인 나로 말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실패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우에는 오히려 더욱 실패자 같은, 혹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마치 부정적 형태로 나타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 같은 형태로 말이죠. 반대로 성공한 나, 훌륭한 나의 자아상은 완벽주의와 성취 지향으로 직결됩니다. 

 

그러나 세상 많은 일이 그러하듯 우리의 자아 역시 이렇게 이분법적인 범주로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좋고 나쁨, 훌륭함과 부족함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거나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성장하고 경험치를 쌓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완벽하지 못한 자아에 대해 자기연민(self-compassion)을 갖고 보듬고 토닥여 주는 것은 어떨까요?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서 슬펐던 나,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싶었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참 잘했다. 수고했다’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수치심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완벽과 성취를 끊임없이 갈구했던 우리의 내면이 자긍심과 스스로에 대한 인정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출처 : 정신의학신문]